한중일 경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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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개요2. 상세
2.1. 패권경쟁의 역사
2.1.1. 고대~중세 중국 중심의 중화사상2.1.2. 근세 일본의 임진왜란한족 왕조의 몰락2.1.3. 서양 열강의 등장과 일본의 제국주의화2.1.4. 냉전 구도 성립
2.2. 패권 경쟁의 시작
2.2.1. 현대 동아시아 패권경쟁 1라운드, 중국 VS 일본2.2.2. 한국의 경제성장과 한류의 발달, 한중일 패권경쟁 시작
3. 한중일 패권경쟁의 종류
3.1. 영토, 영해 분쟁
3.1.1. 독도 분쟁3.1.2. 이어도 분쟁3.1.3. 가거초 분쟁3.1.4. 2광구 분쟁3.1.5. 센카쿠열도 분쟁3.1.6. 7광구 분쟁
3.2. 경제3.3. 문화3.4. 역사 왜곡
4. 관련 문서5. 둘러보기

1. 개요 [편집]

대한민국, 중화인민공화국, 일본국 세 국가의 동아시아 패권 경쟁. 중국은 경제력 2위요 군사력 3위, 일본은 경제력 3위에 군사력 5위, 한국은 경제력 10위이자 군사력 6위이다. 한마디로 전세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강국들의 패권경쟁이다.

2. 상세 [편집]

2.1. 패권경쟁의 역사 [편집]

한중일은 접경국으로, 이 세나라는 오래전부터 역사적으로 공존해온 관계다. 그래서 한국사를 설명할 때 중국, 일본은 정말 빼놓을 수 없을 정도로 한국과 연관이 있었고 서로 많은 인적, 물적 교류를 해왔다. 또한 이웃나라라서 그런지 동맹을 맺을 때도 있지만 서로 죽어라 싸운 적도 많았다.

2.1.1. 고대~중세 중국 중심의 중화사상 [편집]

중국은 오래전부터 대륙을 점령한지라 아시아의 여러 나라들에게 영향을 끼쳤고 다른 국가들은 당시 아시아의 최강자인 중국을 따르고 조공할 수 밖에 없었다. 고조선한나라가 조공을 바치라고 했다가 거절하자 처들어와서 결국 멸망하였고 신라당나라가 연합하여 백제, 고구려를 멸망시킨 등 중국사의 여러 국가는 한국사의 국가들을 침입하거나 멸망시킨 사례가 많이 있다. 그렇다고 한국은 당한 것만은 아니다. 살수대첩, 안시성 전투 등에서 몰려오는 중국군들을 모두 섬멸한 적이 있으며 수나라는 고구려에게 너무 깨져서 국력이 쇠약해졌고 결국 농민봉기로 멸망하고 말았다.

삼국시대 당시 일본은 한국, 중국보다 기술력이 훨씬 떨어졌으며 백제, 가야에게 여러 기술과 물품을 지원받았다. 그래서인지 당시의 백제, 가야와 일본은 서로 혈맹 수준으로 사이가 매우 가까웠고 백제가 전쟁할 때는 와서 참전해줬으며 심지어는 백제의 멸망 후 백제부흥운동군도 끝까지 지원해주었다.

조선시대 때는 친명정책을 펼치며 조선과 명나라는 매우 긴밀한 관계를 맺었다.

2.1.2. 근세 일본의 임진왜란한족 왕조의 몰락 [편집]

그러나 일본은 몇 백년간 얌전히 지내다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전국시대 통일 이후 세력을 키웠고 결국 임진왜란을 일으켰다. 이 전쟁으로 조선은 일본을 막긴 했지만 많은 백성이 죽거나 일본으로 끌려갔으며 문화재가 약탈당하는 등 매우 큰 피해를 입었고 병력과 자원을 지원해준 명나라는 국력이 쇠약해지고 결국 이자성의 반란으로 명나라는 쓰러지고 대륙은 만주의 여진족이 세운 나라인 청나라가 가져가게 된다. 조선은 명나라와 동맹을 맺었고 여진을 배척했기에 끝까지 명나라를 위해 싸우다가 결국 청나라에게 침입 당하여 조선 왕청나라 황제 앞에서 절하면서 머리박는 굴욕을 겪고 이후 조선은 청나라에게 조공을 바치게 되었고[1] 일본은 도요토미 히데요시 사후 혼란한 열도를 다시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통일시키면서 에도 막부를 개창하였다. 일본은 조선과는 다시 통교를 하였고 서양과 교류를 하였다.

2.1.3. 서양 열강의 등장과 일본의 제국주의화 [편집]

대항해시대로 시작된 서양 열강들의 식민지 개척 유행이 시작되며 여러 서양 국가들은 아시아로 처들어와 무력 시위를 하며 개항을 요구했다. 한중일도 예외는 아니었다. 일본의 경우는 미국의 협박으로 어쩔 수 없이 개항을 하였다. 그러나 일본은 개항을 한 후 서양의 문물을 빠르게 받아들이며 발전하여 급성장하였고[2] 일본도 다른 제국주의 열강들처럼 식민제국이 될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결국 일본은 조선처들어와 강화도 조약을 맺었고 류큐 왕국을 병합시키는 등 식민제국 활동을 본격히 했다. 당시 조선은 여러 서양 국가들의 침입에도 끝까지 쇄국정책을 고수하며 개항을 안하다가 일본에 의해 강제로 개항을 하게 된다. 청나라는 아편전쟁, 청일전쟁 등 여러 제국주의 열강의 침략과 내부 혼란으로 결국 신해혁명으로 멸망하여 중화민국 정부가 들어서게 되었다. 그리고 당시 근대라는 시대적 상황에 따라가지 못했던 조선, 대한제국은 결국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을 이기고 돌아온 일본제국에게 병합당하며 일제 통치하에 놓여진 식민지가 되고만다.

1930년대에는 일본이 만주사변중일전쟁을 일으켰고 난징 대학살 등의 전쟁범죄를 저질렀다. 또한 일본은 점령지 국민들에게 가혹한 노동을 시키고, 인권을 탄압하며 전쟁에 동원시켰다. 자세한 내용은 일본의 전쟁범죄 문서 참조. 군부의 폭주를 막지못한 일본은 결국 미국을 상대로 진주만 공습을 감행하였고 태평양전쟁을 일으키게 되지만 군사력을 비롯한 모든면에서 열세였던 일본은 결국 미국에게 항복하게 되며 조선은 식민지에서 해방되었고 중국도 중일전쟁에서 해방되게 된다.

2.1.4. 냉전 구도 성립 [편집]

제2차 세계 대전 직후 소련을 대표로 한 공산주의 세력과 미국을 대표로 한 자본주의 세력이 대립하는 냉전 구도가 성립되었다. 자세한 내용은 냉전 문서 참조. 한국의 독립 직후 소련은 공산주의 세력을 키우기 위해 한반도 북쪽을 점령하고 이에 미국은 동아시아 전체의 공산화를 막기 위해 한반도 남쪽을 점령하였다. 이로 인해 한국은 3년간 신탁통치를 받게 되었고 결국 북쪽은 공산주의, 남쪽은 자본주의로 갈라졌다. 한편 일본은 제2차 세계 대전에서 패망하고 7년간 미국의 군정통치를 받으며 자본주의 세력이 되었으며 중국은 국공내전중국 공산당의 승리로 끝나면서 중국 공산당이 중국 대륙을 가지게 되었고 공산주의 세력이 되었다. 1950년, 북한이 한반도 전체를 공산화하기 위해 6.25전쟁을 일으켰다. 이에 미국을 비롯한 여러 UN 연합국들은 남한을 도와 참전했다. 남한은 북한에 의해 낙동강 이남까지 밀리다가 인천상륙작전으로 두만강 이남까지 밀고올라갔다. 그러나 이에 위기를 느낀 중국이 참전하며 국군과 유엔군을 다시 남쪽으로 후퇴시켰고 이후 2년 후 남한과 북한은 휴전을 맺으며 전쟁은 일단 끝이 났다.

2.2. 패권 경쟁의 시작 [편집]

2.2.1. 현대 동아시아 패권경쟁 1라운드, 중국 VS 일본 [편집]

전쟁 직후 대한민국은 최빈국이어서 경제 복원에 많은 시간이 걸렸다. 그 때문에 현대 동아시아 패권 경쟁은 중국과 일본의 경쟁으로 시작되었다. 당시 미국은 남북으로 갈라진 한국을 신경써야 했기에 일본을 주의하지 못해서 전범 청산도 제대로 못했고 6.25전쟁으로 미국이 일본을 더 신경쓰지 못하게 되자 일본에게 공장을 지원해주고 자국의 군대도 만들라고 하며 일본은 제2차 세계 대전 직후 가장 먼저 발전한 동아시아 국가가 되었다. 일본은 경제를 회복했지만 중국은 땅만 넓지 문화대혁명, 대약진운동 등으로 삽질만 해댔고 한국은 최빈국이었어서 설명이 필요없다. 그러다가 중국은 덩샤오핑이 집권하면서 경제가 크게 발전하고 2010년 즈음 중국의 경제력은 일본의 경제력을 추월하고 중국은 본격적으로 일본과 경제전을 벌였다. 중국과 일본의 경제전은 분쟁지인 센카쿠 열도(중국명:댜오위다오) 때문에 본격화되었다. 2010년 9월, 일본이 센카쿠 열도 주변에서 불법 조업을 하던 중국인 어부를 체포했는데 이에 중국 정부는 강력히 항의하며 일본 관광을 금지하고 희토류 원소 수출을 중지하겠다는 경제 협박을 벌이며 결국 일본 정부는 중국인 어부들을 무조건 석방하는 굴욕을 겪었다. 2014년 이후 일본은 중국의 희토류 원소 수출 강제 중단에 대해 미국, 유럽연합과 손잡고 WTO제소해 승소를 이끌어냈다. 또 미국에게서 희토류 원소 기술을 전수받아 독자적으로 희토류 원소를 생산하는 기술을 개발하였고, 기존 제품에서 희토류를 추출해 내는 재활용 기술, 희토류가 필요 없는 새로운 생산 기술 등을 개발하는데 성공하였다. 거기에 인도, 브라질 등으로 수입처를 다양화하면서 더 이상 중국으로부터 희토류를 수입할 필요가 없어졌다. 이것 때문에 중국의 관련 기업들이 줄도산을 맞게 되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미 지질조사국(USGS)의 조사에서와 같이 지난해(2018년)에도 여전히 희토류 글로벌 생산량(17만t)의 70.6%(12만t)가 중국산이었으며, 심지어 직전 4년(2014~2017)간 미국이 수입한 희토류의 80%가 중국산이었다고 한다. # 즉, 앞에서와 같은 대중 의존도를 줄이기 위한 노력에도 전자제품 생산 등의 수요 증가와 여전히 중국 대체 공급처가 중국만큼 경쟁력이 있지 않기에, 중국은 일본뿐만 아니라 미국을 상대로도 희토류 수출제한을 시전하는 중이다. 결국 채산성이 문제다. 요약하자면 독자적으로 희토류 원소를 생산하는 기술을 개발하거나, 기존 제품에서 희토류를 추출해 내는 재활용 기술, 희토류가 필요 없는 새로운 생산 기술 등을 개발하는데 성공하였다고해도 그것이 채산성이 없으면 대량양산으로 이어지기는 매우 힘들다는 것이다.

2.2.2. 한국의 경제성장과 한류의 발달, 한중일 패권경쟁 시작 [편집]

한편 한국은 6.25전쟁 직후 북한보다 못사는 최빈국이었다. 그러나 박정희 정부경제 개발 5개년 계획, 새마을 운동으로 한국을 발전시키고 파독 광부와 간호사, 베트남 전쟁 참전, 일본에 대한 손해배상 요구, 수출품을 대량 생산으로 외환을 벌어들이며 대한민국 경제성장의 기초를 닦았고, 이후 대한민국은 한강의 기적이라는 경제 성장으로 88올림픽까지 개장하며 급격하게 발전했다. 1997년 외환 위기로 경제가 일시적으로 침체됬지만 이를 빨리 극복했으며, 2008년 세계적으로 경제가 침체된 대침체 때도 위기를 쉽게 넘어가는 등 경제 성장은 멈추지 않았다. 2010년대 이후부터 한류가 퍼지고 삼성, LG 등 한국의 대기업들이 가전제품을 해외로 수출하였으며, 현대자동차, 기아자동차 등의 회사에서 자동차도 수출, 조선업, 반도체 산업도 발달하고 코로나19 범유행 사태에 전염병을 상대적으로 억제하는 성과를 통해 한국을 아는 국가가 많아지기 시작했다. 한국은 급격한 성장 덕에 강대국에 가까운 지역강국으로 성장했으며 이에 따라 한국, 중국, 일본은 동아시아 3국으로 묶이게 되었다.

이처럼 한국이 큰 경제성장을 이룩하자 중국, 일본에 대항할 수 있는 힘이 어느 정도 생겼고, 이는 곧 한중일 3국의 동아시아 패권경쟁을 알리는 신호탄이 되었다.

3. 한중일 패권경쟁의 종류 [편집]

3.1. 영토, 영해 분쟁 [편집]

중국과 일본 사이 분쟁하는 지역은 센카쿠 열도, 한국과 중국 사이 분쟁하는 지역은 이어도, 가거초, 제2광구 이며 한국과 일본 사이 분쟁하는 지역은 독도, 한중일 3국이 분쟁하는 지역은 7광구다. 이외에 간도백두산 문제도 있으며 일부 사람들은 대마도가 한국 땅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3.1.1. 독도 분쟁 [편집]

3.1.2. 이어도 분쟁 [편집]

3.1.3. 가거초 분쟁 [편집]

3.1.4. 2광구 분쟁 [편집]

3.1.5. 센카쿠열도 분쟁 [편집]

3.1.6. 7광구 분쟁 [편집]

3.2. 경제 [편집]

한국이 일본의 전자산업, 조선업 등을 역전하며 해외 국가들은 일본산 가전제품을 많이 사다가 한국산 가전제품으로 물타기하는 등 한국이 일본의 경제산업을 역전한 적이 많다. 최근 중국이 한국의 경제산업을 따라잡으려고 노력하는 중.

3.2.1. 한중관계/불법조업 [편집]

3.2.2. 한일 무역 분쟁 [편집]

3.2.3. 조선업 선박 수주 경쟁 [편집]

한중일 3국의 선박 수주량 및 점유율 (2013~2019.06)

한중일 3국은 조선업 분야에서 끊임없이 경쟁하는 관계로, 전 세계 선박 수주량의 1·2·3위를 차지하고 있다. 2020년 전 세계 선박 발주 1,924만 표준선환산톤수(CGT) 중 한국이 819만CGT(42.6%)를 수주해 세계 1위를 차지했고, 중국은 793만CGT로 2위, 일본은 137만CGT로 3위에 올랐다. 최근 3국의 조선업계 모두 자국 기업 간 인수합병을 통한 몸집 불리기에 나서면서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

3.2.4. 메콩 개발 경쟁 [편집]

파일:한중일 메콩 개발.jpg
한중일 3국은 메콩강 유역의 동남아 국가들, 주로 태국, 베트남 등을 중심으로 개발 경쟁을 벌이기도 한다. #

3.3. 문화 [편집]

3.3.1. J-POP vs K-POP [편집]

일본 J-POP은 20세기 후반에 벌써 아시아 지역에 유행시켰고 빌보드 1위를 한적이 있다. 그러나 21세기에 유행을 시작한 K-POP은 유행의 규모가 더 크고 K-POP도 빌보드 1위를 찍으며 J-POP과 경쟁 상대가 되기도 한다.

3.4. 역사 왜곡 [편집]

한중일 패권 경쟁 중에서 가장 질 나쁜 사례. 3국 공통으로 가장 큰 문제가 되는 것은 바로 환단고기성 역사 왜곡이다. 한국의 경우 해당 문서 참조.[3] 중국과 일본의 경우 환빠/해외 문서의 해당 문단 참조.

3.4.1. 중국의 역사왜곡 [편집]

중국의 역사왜곡 중 대표적인 것은 동북공정. 중국 동북쪽(만주)의 국경선 안에서 일어난 모든 역사는 한족의 역사라고 우기는 것이다. 고조선, 고구려, 발해사를 중국사라고 우기는 것도 이에 해당한다. 이 외에 공산주의 찬양이 있으며 요즘은 김치한복자기네 것이라 우기는 등, 한국의 여러 문화를 뺏어가려하고 우기는 범위가 점점 넓어지고 있다.

3.4.2. 일본의 역사왜곡 [편집]

일본의 역사왜곡 중 대표적인 것은 바로 전쟁범죄 미화. 알다시피 일본은 일본 제국 당시에 많은 전쟁범죄를 저질렀지만 지금까지도 이를 부인하고 있고, 오히려 그 당시의 전범들을 찬양하는 등 전혀 반성의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3.4.3. 한국의 역사왜곡 [편집]

한국도 옆나라인 일본, 중국과 마찬가지로 역사왜곡이 있다. 대표적인 것은 간도 문제. 간도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나 한국과 상관없는 서간도에 영유권을 주장하는 것은 문제가 된다.[4] 이 외에도 환단고기 같이 국뽕에 너무 취해 한국이 세계를 점령한 것마냥 꾸미고 심지어 외국인에게 한국 찬양을 강요하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4. 관련 문서 [편집]

5. 둘러보기 [편집]

[1] 에게 조공한 것과는 그 성격의 차이에 있어서 전혀 달랐다. 명과의 조공은 국가간 무역에 성격이 더 강하고 서로의 관계를 확인하는 용도였다면 청과의 조공은 말그대로 착취였고 양국의 상하관계 확인하는 용도였다. 과는 태조대를 제외하면 수평적인 관계는 아니였지만 중국과 구별되고 독립국의 지위를 인정 받을 수 있었고 내정간섭 또한 없었다. 하지만 청은 군사적으로 조선을 굴복시켰고 조선을 정말 속국내지는 번국으로 인식했다 후에가서는 청이 중원을 정복하고 여유가 생기면서 조선에게 무리한 요구가 줄어들긴 했다만...구한말 근대화 시기에는 대놓고 조선의 대한 예속권을 국제적으로 인정받으려는 시도가 있었고 일부 인정받기까지했다.[2] 일본이 근대화를 성공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에도막부때부터 꾸준히 발전해온 상공업이 밑바탕이 되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많이들 오해하는 것은 근대화를 개항을 하여 서양문물을 받아드린다면 근대화가 되는 것이라고 알고있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근대화는 그 이전부터 꾸준히 쌓아오던 상공업의 발전과 사회의 발전이 뒷바침 되있어야지만 근대화를 성공 시킬 수 있다. 자세한건 메이지 유신/조선과 일본의 차이점[3] 다만 한 가지 차이가 있다면 환단고기는 한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밀어주는 역사 왜곡이 아니라는 것이다.[4] 당장 교과서의 간도 관련 내용을 봐도 서간도와 북간도가 같은 '간도' 로 나와 마치 둘다 우리가 수복해야하는 땅인 양 그려져 있다. 실제로 서간도와 북간도를 모두 같은 간도로 오인하고 서간도도 우리 땅이라고 알고 있는 사람들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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